[푸른하늘] ‘우주인 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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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스 우주선 발사 전날 저녁. 대한민국 우주인 이소연씨는 다른 두 우주인과 함께 영화를 본다.
‘사막의 흰 태양’이라는 제목의 1970년대 러시아 영화다. 발사 전날에 영화 ‘사막의 흰 태양’을 보는 것은
소유스 우주선을 타고 올라가는 우주인이 치러야 할 ‘우주 전통’이기 때문이다.
최초의 우주인인 유리 가가린이 우주를 다녀온 뒤 47년이 지나는 동안 400명이 넘는 사람이 우주를 방문하게 되면서
징크스, 에티켓, 의식이 포함된 우주 전통이 자연스레 생겼다.
발사 당일 우주인은 러시아연방우주청 관계자에게 출발신고를 하고 발사장에 도착하기까지 수많은
우주 전통을 지켜야 한다.
먼저 환송하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할 때는 손만 흔들 뿐 절대 악수를 해서는 안 된다.
악수가 우주비행에 불운을 불러올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수㎞ 떨어진 발사장으로 향하는 버스는 반드시 한 번 정차한다.
안전한 비행을 기원하는 ‘거룩한’ 의식을 거행하기 위해서다. 버스가 멈추면 우주인은 밖으로 나와 우주복을 열고
버스 바퀴에 소변을 본다. 이 의식은 가장 오래된 우주 전통이다.
유리 가가린은 1961년 4월 12일 발사장으로 향하던 도중 버스에서 내려 바퀴에 소변을 봤다.
가가린은 “자연의 부름”(call of nature)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다만 여자 우주인은 이 풍습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
소유스 우주선도 징크스를 극복해야 한다. 소유스를 실은 기차는 시속 5㎞의 속도로 발사장으로 이동하는데
러시아우주국 관료들은 동전을 레일 위에 올려 기차가 밟고 지나가게 한다. 동전이 납작해지면 비행이
성공한다는 미신이 있기 때문이다.
이소연씨가 국제우주정거장(ISS)에 도착해도 우주 전통은 계속된다. 이소연씨가 궤도 모듈의 문을 열고
ISS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러시아 전통의 환영선물인 빵과 소금을 받게 되고 미국 전통인 종을 울린다.
종을 울리는 의식은 2000년 미국 우주인 윌리엄 셰퍼드가 종을 설치하며 시작됐다.
미국의 해군은 군인이 새로이 부대에 들어오거나 떠날 때 종을 울리는 의식이 있다고 하는데
그 의식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한편 2003년에는 러시아의 즈베즈다 서비스 모듈의 트레드밀(러닝머신)을 찍은 사진이 화제가 됐다.
사진 왼쪽 귀퉁이 벽에 1달러 지폐와 50루블 지폐가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전통은 미르정거장에서 한 미국 우주인이 러시아 우주인에게 1달러를 건네며 “영화 한 편을 봐도 되겠냐”고
장난스럽게 요청한 데서 시작됐다. 현재 ISS에서 우주인은 서로 무언가 부탁할 때 자국의 화폐를 주면서 부탁한다고 한다.
ISS에 도착한 대한민국 우주인 이소연씨도 다른 우주인에게 우리나라 돈을 주며 부탁하는 전통을 지키게 된다면
ISS 모듈 벽에 1달러와 50루블과 우리나라의 1000원짜리 지폐가 나란히 붙게 되지 않을까?
국제우주정거장에 대한민국의 지폐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까지 덧붙여지기를 기대해 본다.
/(글:안형준과학칼럼니스트,자료제공=한국항공우주연구원)
기사입력 2008-04-03 17:09 최종수정2008-04-07 08: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