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잘하는 아이 이야기

계획 세워 차근차근.... 자기주도학습 `하면 된다`

부비디바비디 2009. 11. 4. 15:39
최근 학생, 학부모들의 화두는 ‘자기주도학습’이다. 자기주도학습의 핵심은 ‘스스로 공부’하는 거다. 그런데 많은 학부모·학생들은 이 말을 ‘독학’으로 오해한다. 서상훈한국학습법센터 소장은 자기주도학습을 “학습의 시작부터 끝까지 스스로 관리·통제하는 복잡한 과정”이라고 정의한다. 그런데 학부모들은 ‘스스로’란 말에만 눈이 묶이는 것 같다. 서 소장은 “무조건 혼자서 공부하는 ‘독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관리력’과 ‘통제력’을 기를 것”을 강조했다.

지난 10월26일, 중1 때부터 계획표를 짜고 실천해왔다는 이유나(정의여중3)양의 집에 찾아갔다. 이양의 방에 들어서니 벽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메모지가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메모지에 무엇이 적혀 있냐고 물었더니 쑥스러운 표정으로 “아무것도 아니다”라며 손사래를 쳤다. 곁눈질로 훔쳐보니 ‘향약’ ‘두레’ 같은 것들이 보였고, 그 밑에 설명이 적혀 있는 것이 아마도 외워야 할 것들을 붙여 놓은 듯했다.

이양은 “학원이 맞지 않아 다니지 못하는데 다른 애들에게 뒤처질까봐 불안했다”며 말을 시작했다. “갓 입학했을 때만 해도 할 일들을 자주 잊고, 미루기도 많이 했다”며 “‘이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에 계획표를 짜기 시작했고, 덕분에 성적도 전교 40위권에서 10위권으로 올랐다”고 밝혔다. 이양은 자기주도학습의 본질인 ‘관리와 통제’의 중요성을 정확히 알고 있는 듯했다.

계획표를 세워 공부하면서 크게 달라진 점을 물었더니 “자기 통제력이 늘었다”고 단호하게 답했다. “예전엔 자주 잊고, 미뤘다”며 관리가 안 됐던 자신의 모습을 솔직하게 밝히면서도, 시간과 생활을 자신의 통제 아래 두게 된 지금의 모습엔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또 계획표 짜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거나 힘들진 않았냐는 질문에 “주간 단위로 요일별 계획을 세우는데, 머릿속에 연·월간 학습 목표가 있어 5분 정도면 짤 수 있다”고 답했다. 이 대답을 통해 이미 연 단위까지 시간을 관리하는 이양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이양의 어머니 신혜진(43)씨는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예전엔 공부를 하려고 하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했다”며 “계획표를 짜기 시작한 1학년 때만 해도 계획대로 공부하지 못하면 힘들어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양은 자신의 문제점을 찾아 해결하는 자기주도성과 집중력을 보였다. 계획대로 하지 못하면 낙담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문제점에 집중해 해결하기 시작한 것이다. 신씨는 “유나가 시험을 볼 때마다 계획표가 구체적이고 실천 가능한 방향으로 바뀌기 시작했다”며 대견해했다.



그런데 계획표만 잘 짜면 성적이 오를까? 실제로 공부할 수 있는 ‘집중력’ ‘암기력’ ‘기억력’ 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기대할 수 없다. 서 소장은 “아이의 학습 성향과 소질, 능력을 고려해 학습 방법을 찾을 것”을 권유한다. “학습에 성공한 사람들의 학습법을 자기주도학습법으로 여겨 학습 성향과 소질, 능력을 무시한 채 무조건 ‘좋은 학습법’이란 것을 좇다간 실패할 수 있다”고 지적하는 서 소장은 “학부모들은 단기간에 결과가 곧바로 드러나는 학습법에 관심이 많다 보니 ‘누구는 이렇게 했더라’는 말에 혹해 따라 하는 경우가 많다”며 “성공한 학습자를 무작정 따라 하지 말고 그들의 사고하는 방식이나 기억하는 과정을 유심히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나 역시 중학교 입학 뒤 남들의 학습법을 많이 따라 했다”고 밝히는 신씨는 “계획표를 짜면서 시간 관리가 쉬워지고, 생활도 통제할 수 있게 돼 계속 발전시킨 것 같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이양의 계획표를 보면 ‘이해 안 되는 부분만 쿠키 선생님 강의 듣기’ ‘틀린 것 보고 왜 틀렸는지 확인하기’처럼 몇 가지 특이한 사항들이 눈에 띈다. 이양의 계획표를 보면 ‘집중력’이나 ‘암기력’ ‘기억력’과 같은 학습 능력을 고려해서 매우 세부적으로 계획을 짰음을 알 수 있다. 자신의 학습 능력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인터넷 강의(이하 ‘인강’)와 같이 일방적인 형태의 수업도 훌륭한 학습도구로 활용하고 있었다. 이양은 “1학년 때 친구를 통해 인강을 알게 돼 지금까지 이용하고 있다”며 “인강으로 예습하고, 시험 때는 ‘끝짱특강’과 같은 시험 맞춤형 강의로 정리한다”고 답했다. 이런 이양의 모습에서 ‘공부하는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이양은 예비 중1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며 “고등학교에 올라가면 야자 시간처럼 혼자 공부하는 시간이 많다는데, 그 시간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을 들여놓는 것이 좋다”고 했다. 또한 “학원 계획표에 따라서만 움직이면 거기에 의존하게 돼 ‘스스로 공부하는 힘’이 사라진다”고 강조했다. 이양이 자기주도로 학습을 하면서 얻은 것은 성적만이아니었던 것 같다. 인터뷰를 마친 이양의 얼굴엔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얼마든지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엿볼 수 있었다.

정종법 기자 mizzle@hanedu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