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는 사고력의 ‘보약’
이 세상에는 두 가지 글쓰기가 있습니다. 하나는 다른 사람이 읽어주기를 바라는 글, 또 하나는 자신만이 읽는 글쓰기입니다. 다른 사람은 결코 읽어서는 안 되는 글이 바로 일기입니다. 일기검사를 한다는 것, 아이들이 쓴 일기를 부모가 읽는다는 것은 이미 그 글이 일기가 되지 못함을 의미합니다. 아이들이 대체로 11살에 접어들면 일기는 더 이상 자신만의 생각, 느낌을 쓰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자신의 일기를 몰래 읽는다는 것을 의식하면서 쓰는 ‘정치적인 일’ ‘주장글’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외롭고 고독하게 자신만의 성찰하는 글을 쓰는 경험을 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사유의 문화일 것입니다. 마치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보듯이, 일기는 스스로를 성찰하는 공간이 될 것입니다. 글쓰기 학원이나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하는 ‘일기지도’를 보면 마치 ‘반성문’쓰기를 훈련시키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일기에는 꼭 하루 생활 속에서 반성할 것, 고쳐야할 점을 찾아내어 쓰고 결심을 적어야만 일기가 된다는 고정관념을 심어주는 것이지요.
우리는 일기를 쓸 때 습관적으로 ‘날짜’를 적습니다. 만약 일기가 자기만이 보는 글이라면, 일기에 날짜를 쓰는 것은 자신이 언제 쓴 글인가를 확인하기위해 날짜를 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일기에는 예수가 태어난 난 날을 시작으로 한 ‘예수력’ ‘서기력’이 아니라 자기만의 날짜를 적을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자기만의 날짜를 가질 수 있습니다. 즉, 차오름이 태어난 날을 기점으로 시작하는 ‘차오름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차오름이 태어난 날부터 오늘이 며칠째 되는 날, 내가 좋아하는 선생님을 만난지 며칠째 되는 날 등 자신만의 기준으로 날짜를 정하여 일기에 쓸 수 있습니다. 자기만의 날짜를 갖는 것은 아이들에게 시간과 날짜에 대해 보다 폭넓은 사고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종류의 날짜가 있습니다. 불기, 단기, 이슬람기 등 종교마다 자신들만의 날짜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역사 속에서는 왕마다 자신을 기준으로 ‘연호’를 정하여 날짜를 사용합니다. 자신만이 읽을 수 있는, 자신을 위한 글인 일기 속에서 아주 편하게 자신의 날짜를 적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일기에는 날씨를 씁니다. 군대 내무반일지형식의 일기쓰기는 비, 맑음, 흐림 등을 그림으로 그려 동그라미를 치게 합니다. 이것은 기상청에서 발표한 날씨일 뿐입니다. 사람마다 날씨에 대한 느낌이 다릅니다. 아주 맑은 날이지만 마음이 우울한 날이 있습니다. 날씨도 우울하게 느껴집니다. 비가 오고 흐리지만 기분이 좋고 행복한 날이 있습니다. 이렇듯 날씨도 기상청날씨가 아니라 나의 느낌, 나의 마음의 날씨를 일기에 쓸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만의 날씨에 대해 문장으로 써 지겠지요.
하루 생활 중에 반성해야할 점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가장 행복했던 순간, 자신이 자랑스러웠던 일, 감사하고 고마웠던 사람들, 감격하고 감동의 에너지가 전해졌던 장면, 그리고 놀라고 궁금했던 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그것을 음미하며 즐길 수 있는 일기쓰기야 말로 사고력의 보배입니다.
일기는 그 어느 누구도 어찌할 수 없는 나만의 공간, 글쓰기공간, 사유의 공간입니다. 일기 속에서는 그 어떠한 상상도, 그 어떠한 사유도 가능합니다. 일기에는 자신을 소리쳐 자랑할 수 있으며, 세상을 향해 마음껏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아무것도 의식하지 않은 채.
그러므로 일기쓰기는 자존과 자기긍정, 자신에 대한 신뢰를 확인하고, 사유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즐거움을 선물합니다. 자신만의 세계, 자신의 성찰력, 하루 생활 속에서 자신을 스스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일기,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사유의 경계를 마음껏 확장할 수 있는 일기야말로 사고력의 보약입니다. 과연 우리 아이는 일기쓰기에서 이러한 사유의 자유, 즐거움을 느끼고 있을까요? 아이와 함께 아이만의 날짜를, 그리고 부모의 날짜를 찾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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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오름/지혜의숲사고력연구원 원장, <엄마가 키워주는 굿모닝 초등 사고력>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