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생들 ‘영어 왕따’ 시달린다… 5명중 1명 직간접 경험
[국민일보] 2007-07-10 18:30

서울 노원구의 초등학교 3학년인 A군은 지난 3월 학교에서 영어를 배우면서 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하기 시작했다. 초등 1∼2학년 때부터 영어학원을 다녔던 친구들은 대부분 영어에 대한 기초 지식을 갖췄지만 수업에서 처음 영어를 접했던 A군은 알파벳조차 생소했다. 친구들은 A군을 ‘영어도 모르는 바보’라며 놀렸다. A군은 영어 수업이 있는 날 하루나 이틀씩 학교를 빠지기 시작하더니 지난달에는 1주일 동안 결석했다.

서울 상계동에 사는 초등학교 2학년 B양은 지난해부터 다니기 시작한 영어학원에서 반 아이들의 놀림거리가 됐다. 아이들은 B양의 영어 발음이 이상하고 목소리도 너무 작다며 자꾸 핀잔을 줬다. 엄마 몰래 자주 학원을 빠지던 B양은 결국 올 초 다른 학원으로 옮겼지만 새 학원에서도 왕따당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계속 놀림거리가 됐다.

충북 충주시에 사는 초등학교 5학년 C군은 영어 성적이 신통치 못했다. 그러자 반에서 영어가 특출나고 싸움도 잘하는 아이가 C군을 ‘바보’라고 부르며 괴롭히기 시작했다. 같은 반 친구들도 이에 동조해 집단으로 C군을 괴롭혔고 하교 후 인근 야산으로 끌고가 폭력을 휘두르기도 했다. 견디다 못한 C군은 최근 아버지 회사 근처로 전학했지만 새 학교에서도 적응에 실패, 조용하고 내성적인 외톨이로 변해갔다.

초등학생 5명 중 1명은 영어 때문에 직·간접적인 ‘왕따’를 경험했고 절반 가까이는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모퉁e돌(대표 이철용)이 자사 홈페이지 ‘전국통문장영어교실’(www.tongclass.com)에서 회원 초등학생 471명을 대상으로 ‘영어로 인한 학내 왕따 현황 및 스트레스’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83명(18%)이 ‘왕따를 당했다’ 또는 ‘왕따당한 친구를 본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특히 남학생들의 경우 ‘왕따당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6%로 여학생(4%)에 비해 높았고, 왕따당한 친구를 본 경험은 여학생(17%)이 남학생(9%)보다 많았다. 또 응답자의 42%는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적 있다’고 대답했다. 스트레스를 받은 이유로 ‘영어를 잘하지 못해서’(30%), ‘영어시험 걱정으로’(24%) 등이 꼽혔다.

그러나 영어로 인한 왕따와 스트레스에도 불구하고 응답자의 66%는 ‘영어를 계속 배우고 싶다’고 답했고, 51%는 ‘영어가 살아가는데 꼭 필요하다’고 밝혀 초등학생들 사이에 영어강박증이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화여대 조연순(초등교육과) 교수는 10일 “영어를 못한다고 왕따시키는 초등학생 문화는 사회 분위기와 연관돼 있다”며 “살아가며 필요한 도구에 불과한 영어가 모든 교육의 목적처럼 돼버린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Posted by 부비디바비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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