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 15년째 'TV 안보기' 운동 서영숙 교수
현대인 하루평균 3시간씩 TV에 중독
가족과 함께 나눌 금쪽같은 시간 날려
94년부터 'TV 안 보기 주간' 정해 실천
유익한 프로그램 접하면 흔들리기도
"저요? TV를 즐겨볼 뿐만 아니라 중독됐었죠. 직업상 밤늦게 집에 들어가니 볼 시간이 없을 뿐이지 여전히 고민해요. 덜 봐야지, 보지 말아야지 하면서…."

15년째 'TV 안 보기' 운동을 벌이고 있는 서영숙(아동복지학) 숙명여대 교수는 이 운동을 "맨 정신으로 하기 힘든 일"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그는 "한 번 경험하면 인생이 뒤바뀌는 일"이라고 했다.

서 교수는 1994년부터 매년 'TV 안 보기 주간'을 정해 TV를 끄도록 하고 있다. 올해는 28일부터 5월 4일까지다.

18일 서울 용산구 숙명여대 연구실에서 만난 그는 얼마 전 TV에서 본 자연 다큐멘터리 얘기부터 꺼냈다.

"퇴근 후 TV를 켰더니 남극 생물체들이 어떻게 추위를 이겨내고 사는지 보여 주는 다큐멘터리를 하는 거예요. 감동적이어서 자고 있는 애들을 깨워서 보게 했어요. TV 안 보기를 하면 이런 좋은 프로그램을 볼 수 없을 텐데 내가 고약한 짓을 하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그는 TV 안 보기 운동을 '일종의 충격 요법'이라고 표현했다. "나처럼 TV 앞에서 마음이 약해지는 사람들은 한 번 경험해 보면 알게 돼요. 내가 얼마나 무의식적으로 TV를 봤는지 깨닫죠. 백 마디 말보다 한번 해보면 알아요."

'첫 경험'이 주는 효과는 대단하다. "아이들이 늦게 자는 건 부모들이 안 놀아주는 데 대한 불만 때문이거든요. TV를 끄면 부모가 아이들과 잘 놀아주니 아이들이 일찍 잠자리에 들어요. 그러면 당연히 부부간에 금실도 좋아지고 가정이 화목해지죠."

서 교수의 'TV 안 보기 운동'은 책 한 권에서 시작됐다. 1990년대 초 한 출판사로부터 마리 윈이 쓴 '더 노 티브이 위크 가이드'(1987) 번역을 제의받은 것. 서 교수는 미국의 TV 안 보기 운동을 소개한 이 책에 큰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TV 안 보는 생각을 하지? 한번 시도해 보면 어떨까."

서 교수는 자신이 원장으로 있는 숙명여대 부속 유치원의 원생들을 대상으로 초유의 실험에 들어갔다. 원생들에게 예외 없이 5일 동안 TV, 컴퓨터, 게임 금지 등 '불가능할 것 같은' 조건을 내걸었다. 아이들보다 부모들의 반발도 컸다.

실험 5일째 되는 날 아침에 성수대교가 무너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한 어머니의 일기가 아직도 생생해요. 실험에 참가한 아이와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것과 국가적 비극에 대한 뉴스조차 못 보는 건 운동을 위한 운동이라는 남편의 의견, 둘 중 무엇을 선택할까 고민하다 아이와의 약속을 지켰다는군요."

실험을 하면 어른보다 아이가 TV를 더 쉽게 끊는다. "아이들은 TV가 없어도 다른 놀이를 개발하며 잘 적응해요. 어른들이 더 막막해하죠. 그 많은 시간을 어떻게 견딜까 안절부절 못하죠."

서 교수는 TV 끄기 운동을 하기 전에 TV 없이 어떻게 지낼까 계획하는 것도 운동의 일부라고 말한다.

"우리가 아이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선물은 시간이에요. 비싼 장난감이나 게임기를 안기는 게 아니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죠. 현대인들은 소중한 시간을 하루 평균 3시간씩이나 TV에 바치고 있으니…. 아이의 인생을 바꾸고 싶다면 일단 리모컨의 전원 오프 버튼을 누르는 용기가 필요할 때입니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동아일보 | 기사입력 2008.04.22 03:11 | 최종수정 2008.04.22 0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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