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소보 사태, 제3차 세계대전으로 번지나?

2008년 02월 24일 (일) 17:06 중앙일보


[중앙일보 유철종] ‘발칸의 화약고’가 또다시 폭발할 것인가.

코소보가 세르비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뒤 서방과 러시아의 갈등이 강대국간 무력 분쟁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러시아가 코소보 독립을 승인한 유럽국가들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를 강력히 비난하면서 무력 사용 가능성까지 배제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기 때문이다.

드미트리 로고진 나토 주재 러시아 대사는 21일 “유럽연합이 코소보의 독립을 인정하고 나토가 위임 받은 권한을 넘어서는 행위를 계속할 경우 러시아도 군사력과 같은 무력에 의존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일부 서방 국가들이 코소보 독립을 지지함으로써 이라크 침공 때와 유사한 전략적 실수를 저질렀다”고 비판했다. 서방이 유엔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의 안보시스템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는 비난이었다. 로고진은 또 “코소보 독립 과정에 이 지역 마약 마피아들의 돈이 사용됐을 수 있다”는 말도 했다.

이에 미국이 발끈했다. 니콜라스 번스 미 국무부 차관은 22일 “로고진 대사의 발언은 아주 무책임한 것”이라며 “러시아 정부는 시니컬하고 역사적 근거가 없는 대사의 발언을 공식적으로 부인하는 성명을 내야한다”고 요구했다. 번스 차관은 이어 “러시아는 코소보 사태 해결을 돕기는 커녕 방해만 하고 있다”고 독설을 퍼부었다. 존 매케인 상원의원도 “러시아가 세르비아에서 극단적 민족주의를 부추기고 있다”고 비난했다
번스 차관의 발언에 대해 로고진 대사가 다시 역공을 가했다. 그는 “러시아는 코소보를 비롯한 국제문제에서 자신의 입장을 표시할 만한 충분한 도덕적·정치적 권위를 갖고 있다”고 반박했다.

코소보 사태가 악화되는 가운데 미국은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로부터 대사관 직원과 가족들을 피신시키기 시작했다. 이 같은 결정은 코소보 독립 선언 이후 21일 미국 대사관이 세르비아 시위대의 공격을 받아 불에 타는 사태가 발생한 뒤 곧바로 취해졌다. 미국인들을 태운 40대의 버스행렬이 크로아티아 국경 지역으로 이동했다고 BBC 등 외신들이 전했다.

미국과 프랑스·영국·독일·이탈리아 등 대다수 유럽 국가들은 17일 일방적으로 독립을 선언한 이슬람 자치공화국 코소보를 지지하고 있다. 반면 같은 그리스정교를 믿는 슬라브 형제국 세르비아와 각별한 유대관계를 맺어온 러시아는 코소보 독립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티벳·위구르 등 자국 내 소수 민족의 분리주의 움직임 강화를 우려하는 중국도 러시아의 입장을 지지하고 있다. 러시아와 서방의 대결엔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발칸 반도에 전략적 교두보를 확보하려는 양측의 계산이 깔려있다.

전통적으로 러시아권에 속했던 발칸반도를 고수하려는 러시아와 새로이 영향력을 확보하려는 미국과 유럽이 맞부딪히고 있는 것이다. 90년대 말 코소보내 알바니아인에 대한 세르비아군의 ‘인종청소’를 막기 위해 공습을 감행했던 나토는 현재 1만 6000명의 군대를 코소보에 주둔시키고 있다. 러시아도 자국의 이해가 심각한 위협에 처할 경우 군대를 파견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렇게 되면 러시아와 중국이 한편이 되고 미국과 유럽이 다른 편이 되어 무력 대결을 펼치는 최악의 상황이 일어날 수도 있다.

유철종 기자

Posted by 부비디바비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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