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늘고 있는 어린이 성폭력 최근 같은 동네에 사는 열한 살짜리 여자 어린이를 성폭행하려다 반항하자 살해한 사건이 일어나면서, 이를 계기로 성폭력 범죄 해결에 대한 사회적 여론이 뜨겁다. 정치권에선 전자팔찌 착용 등 계류돼 있던 10여 건의 성폭력 관련 법안에 대한 심의에 착수했고, 엄중한 처벌과 성폭력 범죄 대책 마련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13세 미만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는 738건으로 2004년에 비해 15건 증가했다. 지난해 전체 성범죄 건수가 1만3,446건으로 전년의 1만4,089건보다 줄어든 것과는 상반된다. 경찰청은 이 가운데 몇 건의 범인이 붙잡히지 않았는지에 대한 통계도 관리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성범죄 가운데 범인이 붙잡히지 않은 비율은 대략 10%에 이른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 접수된 상담 사례도 지난해 청소년 370건, 어린이 211건, 유아 116건 등으로 어린이가 전체의 30%를 넘는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여성주의상담팀 김지선 씨는 상담 통계를 살펴보면, 최근 10여 년 동안 전체 상담 중 어린이 성폭력 피해 상담이 20~25%를 차지하고 있다고 우려를 표한다. “항상 사건이 터지면 여론이 들끓으면서 재발 방지를 외치는데, 제가 상담한 바로는 어린이 성폭력 사건은 꾸준히 증가해왔고, 오늘 내일의 일도 아닌 항상 있어 왔던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의 성범죄에 대한 잘못된 인식 때문에 신고조차 제대로 못하고 쉬쉬하는 경우가 더욱 많습니다. 오히려 가해자는 버젓이 돌아다니고 피해자는 신체적·정신적 충격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죄인 아닌 죄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게 지금까지의 현실이었습니다.”
아이들 가슴에 비수를 꽂는 말들을 삼가세요 아이가 성폭행을 당하면 부모는 아이의 이름을 바꾸고 이사를 한다. 그 과정에서 겪는 부모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아동 성폭행 사건은 목격자나 증거 확보가 힘들다는 특성이 있다. 따라서 진술을 위주로 재판이 진행되는데, 수사 및 재판 과정의 반복된 진술은 아동에게 크나큰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준다. 이 과정에서 아동은 일관성 있는 진술이 어려워지고 가해자는 무혐의 처분을 받는 사례가 빈발했다. “성폭행을 당한 아동의 후유증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심각합니다. 적절한 정신과 치료를 통해 충격을 극복하지 못할 경우 청소년이 되어서도 남자를 기피하게 되고 자기 존중감을 상실한 나머지 자살을 기도하거나 가출을 하게 되고 결국, ‘비행청소년’의 길을 걷기도 하지요. 때론 분에 못 이긴 나머지 어린 딸에게 책임을 묻는 부모도 있습니다. ‘왜 가만히 있었어!’ ‘왜 대들지 않았어?’라고 딸을 나무라는 부모도 간혹 있습니다. 하지만 부모가 딸에게 무심코 내뱉는 ‘왜 반항하지 않았어!’라는 말 한마디는 딸의 심장에 비수를 들이대는 행위예요. 딸은 부모의 그런 말을 듣고 ‘결정적인 상처’를 입기 마련입니다.” 김씨는 아이가 성폭행을 당한 사실을 알았다면 부모가 흥분하지 말고 우선 아이에게 잘못이 없다는 걸 인식시켜야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아이들은 성폭행을 당하면 ‘내가 뭔가 잘못해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난 걸까?’하고 자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럴 때 부모는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아이를 안심시킨 후 아이가 진정 원하는 게 무엇인가를 살펴봐야 합니다. 나쁜 아저씨를 혼내주고 싶다고 생각하는 아이가 있다면 저희 같은 기관의 도움을 받아 고소하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도 있고, 부모의 관심이 절실한 아이에게는 고소장을 먼저 제출하기보다는 아이가 충분히 안정을 찾는 방법부터 모색해야 합니다. 간혹 아이는 관심을 바라는데 부모가 흥분해서 고소에만 혈안이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렇게 되면 아이는 또 다른 상처를 받게 됩니다.”
올바른 성교육이 성폭행 예방의 지름길
하지만 처벌과 재발 방지 노력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어린이 성폭력 예방 노력이다. 예방을 위한 대안으로 김씨는 치료·교화 프로그램을 강조했다. “성폭력을 당한 어린이는 영원히 아물기 힘든 상처를 얻게 됩니다. 그래서 유치원과 초등학교 때부터 성폭력이 얼마나 나쁜 짓인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지속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런 교육은 아이들의 피해를 줄이는 효과와 함께, 미래의 성폭력 범죄행위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더 직접적인 효과가 기대되는 성인 대상 교육도 강화해야 합니다. 또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면담하다 보면 정황상 성추행이 아니라 성폭행일 가능성이 높은 경우가 많은데도 성추행과 성폭행을 가르는 기준이 모호해 가해자가 처벌을 덜 받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를 막을 수 있는 대안도 반드시 마련돼야 합니다.” 또 김씨는 어린이 성교육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인간과 생명을 존중하는 태도와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몸에 익도록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요즘은 형제 없이 자라는 아이들이 많다 보니 모든 걸 혼자 소유해 자기중심적이에요. 자기만 좋으면 된다고 생각하지 남의 입장을 배려할 줄 몰라요. 작은 것 하나도 다른 사람과 나누고, 타인을 존중할 줄 아는 태도가 바로 성교육의 시작이죠. 내가 존중받아야 하는 만큼 남도 소중하다는 걸 아는 사람은 남에게 피해가 가는 행동은 절대 하지 않을 거예요.”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알려주는 어린이 성교육에서 꼭 지켜야 할 5가지
부모가 성에 대한 밝은 생각을 가져야 한다 자녀에게 성교육을 하기 전에 우선 부모가 성에 대해 유연한 사고를 갖고, 성폭력에 대해서도 균형 잡힌 시각을 견지해야 한다. 자녀가 호기심 어린 눈초리로 성에 대해 질문할 때도 당황하거나 회피하지 말고 침착하게 응해야 한다. 부모가 당황하는 것을 아이가 눈치 채면 ‘이런 질문은 해서는 안 되는구나’생각하고 다음부터는 혼자서 궁금증을 해결하려 한다. 아이가 대답하기 난해한 질문을 하더라도 “몰라도 돼” “나중에 크면 다 알게 돼” “아빠한테 물어봐” 하는 식의 대답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성은 아이가 궁금해할 때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들의 호기심과 관찰력은 적당한 시기를 놓치면 교육 효과가 떨어진다. 아이의 질문에 당황하지 말고 자신이 어떻게 태어났는지 자연스럽게 이야기해준다.
신체 부위의 정확한 명칭을 알려준다 집에서의 성교육은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게 가장 좋다. 아이들에게 신체 부위를 설명할 때는 남자와 여자가 다른 곳은 다 같지만 ‘고추’와 ‘잠지’는 모양이 다르다는 것을 알려주는데, 일단 아이들 귀에 익은 고추, 잠지라고 표현한 뒤 “어려운 말로는 음경, 음순이라고 한다”고 덧붙여 정확한 명칭을 알려줘야 한다. 그리고 이 부위는 우리 몸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도 함께 일러준다. 생식기를 소중하게 다루는 법을 가르친다 고환과 자궁 안에 각각 아빠의 아기씨와 엄마의 아기씨가 있으며, 건강하고 튼튼하게 자라야 나중에 어른이 되어 엄마 아빠가 될 수 있다고 일러준다. 그래서 더러운 손으로 만지거나 장난을 쳐서는 안 되며, 다른 친구들의 몸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좋은 느낌과 싫은 느낌을 구분하게 한다 그런 다음엔 좋은 느낌과 나쁜 느낌을 구별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이때는 실례를 들어 아이의 판단을 돕는 것이 좋다. 아이에게 “엄마가 ‘사랑해’ 하고 안아주면 기분이 어때?” “친구가 싫은 별명을 부르면서 놀리거나 머리카락을 잡아당길 때는 어떤 느낌이 들지?” “모르는 어른이 와서 팬티를 벗기려고 하면 어떨까?” “친구랑 엄마, 아빠 놀이를 하다가 싫은데도 옷을 벗어야 한다면?” 하는 식으로 아이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을 들어 싫은 느낌과 좋은 느낌을 구분하게 하는 것. 좋은 느낌과 싫은 느낌을 구분한 뒤에는 수영복 안의 내 몸을 다른 사람이 함부로 만지거나 보거나 해서 싫은 느낌을 주는 것은 나쁜 일이기 때문에 싫은 느낌이 들 때는 ‘싫어요’ ‘안 돼요’라고 말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자신에게 싫은 느낌을 주는 사람이 친척이나 친구들처럼 평소에 알고 지내던 사람이라도 싫은 느낌을 주면 ‘싫다’고 분명하게 이야기하라고 강조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부모만은 나를 믿어줄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준다 아이가 어떤 상황에서든 부모가 나를 믿고 도와줄 거라는 확신이 있어야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혼자 고민하지 않고 부모에게 털어놓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성폭력 문제는 피해자든 가해자든 감추려고 하기 때문에 문제가 더 커지게 된다. 특히 대부분 성폭력 가해자들이 아이들에게 “말하면 죽이겠다”는 등의 협박을 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이러한 협박에도 불구하고 부모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도록 하려면 평소 “엄마와 아빠는 언제나 너를 지켜주고 도와줄 수 있다”고 말해 아이에게 믿음을 주고 안심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발문 성폭행을 당한 아동의 후유증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심각합니다. 분에 못 이긴 나머지 어린 딸에게 책임을 묻는 부모도 있습니다. “왜 가만히 있었어!” “왜 대들지 않았어?”라고 딸을 나무라는 부모도 간혹 있습니다. 하지만 부모가 딸에게 무심코 내뱉는 “왜 반항하지 않았어!”라는 말 한마디는 딸의 심장에 비수를 들이대는 행위예요. 딸은 부모의 그런 말을 듣고 ‘결정적인 상처’를 입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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